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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3_Anna
연휴의 시작. 신나게 놀기 첫번째 순서는 벼르고 벼르던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이다.
한창 대학로 데이트를 즐기던 우리였는데 뮤지컬 안본지 백만년은 된 것 같다. 오늘 볼 뮤지컬은 바로바로 시카고.
워낙에 너무 유명한 공연인데 마침 집 근처 공연장 이어서 한번 가볼까?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가 피나는 티켓팅으로 여럿 실패하고 어떻게 어떻게 겨우 성공한 날이 바로 오늘.
오늘은 명절 전날이라 퇴근이 좀 이르지 않을까 아침부터 기분 좋은 기대감을 안고 평소 출근룩과는 사뭇 다르게 치마도 입고 나름 꾸민 나였다.
역시나 예상대로 이른 퇴근, 뮤지컬 보러 간다고 여럿 자랑을 해대고 쏜살같이 집으로 왔다. 
오빠랑 나름 시밀러룩을 맞춰 입고 화장도 살짝 고치고 들뜬 맘으로 공연장 도착.
7시 30분 공연이라 한시간도 더 남았는데 사람들이 꽤나 복작복작 많았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나 했더니 오픈 한시간 전에 라운지가 열려서 라운지 들어가려고 에스컬레이터 앞에 모인 사람들이더라.
우린 좀 쿨한 편이라 아니 사실 배가 고파서 티켓만 얼른 받아들고 식당에 내려가 밥을 먹고 올라왔다. 

오늘의 캐스트는 정선아, 민경아, 박건형, 김경선 등 내가 보고 싶은 배우들 한가득. 배우들 마다 같은 역할이어도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며 그동안 엄청난 비교짤을 보곤 했느데 그 중 내맘에 제일 들었던 페어가 정선아, 민경아여서 캐스팅 달력을 보면서 고르고 골라 겨우 예매에 성공했다. 그게 벌써 7월의 이야기니까 꽤나 공들인 오늘의 공연 구경.

가까이에 살면서도 극장에만 가봤지 그 위로는 처음 올라와보는데 이렇게 생겼었구나. 시카고 하면 딱 떠오르는 화려함에 걸맞게 배우들의 사진이 벽면에 걸려있고 반짝거리는 포토존까지 예뻤다.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찾아들어오고 무대에서는 보이지 않는 째즈밴드의 연습하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밴드가 무대 아래에 있는 걸까? 궁금했는데 공연이 시작되니 무대 위에 보이는 밴드와 배우들이 함께! 연기를 하는게 아니겠어?! 매우 놀라웠다. 지휘자님의 찰랑이는 머릿결도 공연의 일부인 것 같더군.

첫 곡은 너무너무 유명한 벨마의 올 댓 째즈.
이게 시카고에 나온 노래인지는 몰라도 무튼 어디선가 또는 개그 패러디에서 본 무대ㅡ 나는 그 장면을 내가 보고 싶던 배우로 실제로 본다는 사실에 막이 오르자 마자 울컥할 뻔 했다.
너무너무 멋있는 배우들. 꽤나 많은 배우들이 군무를 추는데 고양이들 같기도 하고 몸짓이 어쩜 그렇게 딱딱 들어 맞는지 싱크로나이즈 동작 마냥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 처럼 신기방기한게 도대체 연습량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지는 무대였다.
시카고 무대에 서려면 키도 몸매도 춤도 다리찢기도 노래도 그냥 모든게 다 완벽해야 설 수 있겠더라.
나는 미리 넷플릭스에서 영화도 보고 그간 휴대폰에 뜨는 온갖 짤들을 다 보고 온 터라 아는 노래가 너무너무 많았지만 영화도 안보고 상대적으로 아는 노래도 많이 없는 오빠는 혹여나 재미가 없을까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진짜 노래가 어디선가 한번쯤은 다 들어봄직한 것들이어서 더 신나고 재밌었고 내용이 다소 충격적이기는 하나 씁쓸해도 그저 웃고 넘길 수 있는 풍자 소설 같아서 좋았다.
언제든 공연을 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배역, 기억에 남는 씬이 생기게 마련인데 오빠는 미스터 셀로판이었고, 나는 썬샤인 양이었다.
썬샤인 양은 캐스팅 보트에 영어로 이름이 쓰여 있어서 '아 외국 배우 분이신가?' 싶었는데 세상에나 반전의 순간엔 나도 모르게 "어머머머!"를 외쳐버리는 통에 옆 관객 분에게 미안해 질 정도였다.
그 밖에도 역시나 였던 주연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잘왔다 잘왔어ㅡ
2막이 오르면 밴드의 매력이 더 커지는데 정말이지 신나는 박자에 맞춰 손바닥에 불이나게 박수를 쳤다. 그에 맞춰 더더욱 커지는 지휘자님의 팔 동작이 인상깊었다.
각각의 배우마다 등장, 퇴장곡이 정해져 있는 것도 신기방기였고, 생각했던 것 보다 매우 소박했던 무대장식도 특이했다. 내가 그동안 봤던 짤들은 진짜 공연 모습이 아니다 보니 나는 그 무대가 그 무대겠거니 했던 통에 처음 봤을 땐 살짝 어라?! 했던 게 사실이다. CHICAGO라고 적힌 빨간색 네온사인이 무대 한 가운데 화려하게 있고 여배우들이 메이크업 받을 때 쓰는 주황색의 조명이 다다다닥 붙어 있는 으리으리한 무대일 줄 알았는데 그런건 없었다. 그렇게 색도 없고 장식도 없는 무대를 검정색 옷만 입은 배우들이 화려하게도 꽉꽉 채웠다는게 놀랍다.
오랜만에 즐거운 공연에 한동안 집에서 흉내낸답시고 까불어댈 오빠랑 나를 생각하니 웃기다. 
오늘의 감상평 얼른 또 돈 모아서 공연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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