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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5_Anna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예전부터 한번쯤은 꼭 보고 싶었던 공연을 보러가는 날이다.

옛날 프로그램이지만 '남자의 자격'이라고ㅡ 이경규 아저씨 나오던 예능이 있었는데 거기서 크리스마스에 호두까기인형 공연을 보던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때 부터 그러니까 꽤나 진짜 옛날옛적 부터 '나도 언젠가 크리스마스에 호두까기인형을 보러가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드디어 이루게 된 버킷리스트.

'크리스마스 = 호두까기인형' 이라서 그런지 티켓팅이 몹시도 힘들었다.

알람을 맞춘다고 맞췄는데 그 찰나에 깜빡하고 예매 사이트 접속을 놓치는 바람에 남아있는 날짜, 남아있는 좌석 중에 두 자리가 붙어 있는 곳을 찾고 찾아 예매한게 마침 크리스마스 당일 6시 공연이었다.

6시 공연에 티켓 수령은 1시간 30분 전인 4시 30분 부터니까 일찍 도착해서 티켓 찾고 저녁밥 먹고 화장실 들렀다가 앉으면 딱이겠지?! 싶었다. 그.러.나.

우린 연휴시즌 광화문거리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이었다.

광화문 맛집, 세종문화회관 맛집을 검색하면 으레 리스트가 주르륵 쏟아지는 디타워.

디타워 식당 어디에도 우리가 밥을 먹을만한 식당은 없었다. 모두 기본 웨이팅 20~ 30분 이상. 오늘은 완전 풀 예약이라 더이상 대기손님을 받지 않는 식당도 있었다.

근처 식당을 찾기에도 공연 시작 시간이 다가와서 애매할 것 같고.. 어찌어찌 찾아 들어간 곳은 김밥헤븐.

오빠는 크리스마스인데 맨날 먹는 김밥에 라면이라 미안하다고 했지만 지금은 서로 미안하다, 내가 미안하다 얘기할 겨를도 없다. 추운 날씨에 여기 들어와서 시간 내에 뭐라도 먹긴 먹는 다는 사실 자체가 감사할 뿐.

잠깐 사이 밥 먹는 동안에 웨이팅은 쭉쭉 늘어났고 양 옆 테이블에 손님들도 다들 우리처럼 '여기라도 와서 다행이다'라고 했다.

애니웨이 다행스럽게 밥도 먹었겠다 이제 공연 보러 갈 순서.

긴 시간이니 화장실도 미리미리 갔다 가려는데 웬걸? 이번에도 웨이팅이다. 공연 시간이 얼마 안남았는데... 불안하다. 불안하고 또 불안하다. 도대체 줄이 줄어드는 기미가 안보인다. 

다행히 5분 세이프에 입구 근처 자리라 늦지 않게 앉을 수 있었다.

관객들이 다들 착석하고 댕~ 댕~ 하고 공연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곧이어 조명이 어두워지고 지휘자님 등장. 그리고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눈 내리는 풍경,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사람들ㅡ 서로 인사하고 눈 싸움을 하기도 하고 모두가 설레 보였다. 

다들 오랜만에 만난 듯 손을 흔들고 집안으로 들어가니 곧이어 화려한 파티가 시작됐다.

무대, 조명, 의상, 그리고 춤. 모두 화려하고 멋있어서 중간 중간 사람들의 박수갈채가 나왔고 나도 연신 '우와ㅡ 우와ㅡ' 하며 감동을 받고 또 받았다.

호두까기인형 하면 '빰 빠빠밤 빰빰 빰빰빠암ㅡ' 하는 멜로디가 딱 떠오르는데 그 것 말고도 되게 많은 부분이 어디선가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들어봄직한 익숙한 음이 참 많았다.

특히 [나홀로집에]서 케빈이 도둑 혼내주려고 위험물 설치할 때 나오는 뭔가 호기심이 생기면서도 장난스러운듯한 그런 멜로디가 괜히 반가웠다.

공연은 기대했던대로 정말 대만족.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많은 인원이 참여한 진짜 대형 공연이더군.!

발레나 클래식과는 평소 거리가 멀지만 오늘로써 발레리나, 발레리노가 진짜 멋있는 거구나 싶었고 대단하다 싶었다. 나는 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런 내가 봐도 '아... 울고 있구나. 기쁘구나!'가 대사 없이 느껴지는 게 참 신기했다. 발끝과 손끝의 미학이랄까ㅡ 

클라라와 호두까기인형의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순식간에 끝나고 아쉬운 순간.

모든 출연자들이 무대에 오르고 오케스트라 단원들까지 인사를 마쳤는데ㅡ 갑자기 'We wish your merry Christmas'가 흘러나온다.

우와ㅡ 오늘 크리스마스라서 특별히 마지막 인사로 캐럴을 준비하셨나보다. 핑크핑크한 무대 위에 많은 사람들. 듣기 좋은 캐럴까지 너무 좋았다.

큰 맘먹고 예전부터 기대해서 온 보람이 있던 호두까기인형.

다음 크리스마스에도 또 보러와야지. 더 빠른 손놀림으로 티켓팅을 성공하리라는 다짐과 함께ㅡ

크리스마스에는 호두까기인형을 보며 한해를 마무리하는 여유로운 어른이 되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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