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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1_Anna
안동하면 빠질 수 없는 곳으로 향하는 길.
도산서원, 하회마을, 봉정사 등 안동 오면 가봐야 하는 여러 장소 중에 처음으로 어디 부터 갈까 고민하다가 오후 일정으로는 도산서원이 거리상으로 가장 적합할 것 같았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크으ㅡ 멋지다.

오늘 날이 추운 만큼 미세먼지 하나 없고 하늘이 너무 쨍하고 예쁜 것. 도산서원에 가면 또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될지ㅡ
금방 도착한 도산서원. 매표소를 오른쪽에 끼고 사람들을 따라 쭉 걸어가면 낙동강따라 저쪽 끝에 마당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흙길 밟으며 걷는 느낌이 참 좋다. 중간에 전망대 표시가 있길래 올라가 봤는데 그렇게 많이 높지 않아 무리 없이 오를 수 있지만 그래도 조금 올라왔다고 시야가 달라지더군.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강 풍경이 조용하면서 고요하면서 멋지더라.

전망대까지 다다르면 왼편으로 도산서원이 보인다. 약간 곡선 코스라 매표소에서 걷기 시작할 때는 안보이다가 조금 더 조금 더 들어가다 보면 짠 하고 나타나는 서원.

본격적으로 서원에 들어서기 전에 시사단과 낙동강 윤슬에 잠깐 시선을 뺏겨 물멍의 시간을 가져봤다. 역시 오길 잘했다ㅡ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도산서원. 조용하고 머랄까 안정감이 들고ㅡ 이렇게 경치가 좋은데 공부가 잘 됐을까 싶을 정도다. 나라면 공부 하다말고 나와 물멍하고 마당에서 뛰어놀고 하느라 정신 없었을 것 같다.
도산서원의 전경이 천원지폐의 모습이라 생각한 나는 지갑 속에 마침 천원짜리가 있길래 얼른 꺼내서 비교해봤는데 지금 보이는 모습은 옛 천원권 속에 있는 모습이었다. 지폐 디자인 바뀐지가 언젠데 언제적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지.

서원 들어서자마자 봄을 봤다. 서울에서는 아직 못본 꽃봉오리와 꽃망울.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와서 그런지 벌써 나무에 팝콘이 내려앉았다ㅡ 아마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 쯤이면 가지 끝마다 팝콘 송이가 귀엽게 붙어있겠지.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천원짜리 지폐 속 그림을 발견했다. 몰랐는데 겸재 정선의 도산서원 그림이 천원의 배경이었구나. 아까 도산서원 모습이 천원지폐에 없는 줄 알고 살짝 아쉬울 뻔 했는데 이렇게 비교해서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이 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주머니 속에 마침 천원짜리 현금이 있다면 약속이나 한 듯 한장 꺼내서 나처럼 사진을 찍었다.

전시관도 한 바퀴 휙 돌고 나와 다시 마당에 들어섰는데ㅡ 으리으리한 양버들 아름드리 나무가 보인다. 도대체 몇년째 살고 있는걸까 궁금한 나무.

서원 구경을 마치고 차를 타러 나가는 길. 경치가 너무 좋고 사람들이 산책하는 모습도 여유로워 보이고 힐링된다.

주차장 한 켠에 기념품샵이 보여서 잠깐 들렀는데 수공예의 윷놀이 세트가 너무 예쁘고 맘에 들어서 혹했다. 여러 작품들이 다 예뻐보였으나 나를 포함하여 방문한 다른 여행객들의 마음을 빼앗는 원픽이었다.

목이 말라 음료수 한병 사려고 가게에 가는데 입구에 사과식혜가 진열되어 있다. 이거이거 빨간 사과그림이 예뻐가지고 안 먹어 볼 수가 있나. 냉장고에 들어있는 시원한 녀석으로 한병 챙겨서 우린 이육사문학관으로 향했다.

이육사문학관 또한 얽힌 추억이 있다. 
도산서원을 돌아나와 2km 떨어져 있다는 퇴계종택에 가보고 싶었던 나. 혼자 뚜벅이로 왔던 20대의 젊은 나는 방금 버스를 놓쳤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아무렇지 않게 그저 걷기를 시작했다.
2km면 그리 멀리 멀지 않은 길이지만 산길로, 인도가 잘 갖춰지지 않은 길로 배낭을 메고 걸어가기란 그리 쉽지 않았다. '이쪽으로 쭉 걸어가면 퇴계종택 방향인데 도산서원 주차장을 빠져나와 이쪽으로 온다? 그 차는 분명 퇴계종택으로 갈 것이다.' 라는 확신에 찬 생각으로 무작정 히치하이킹을 시도.
아주 운이 좋게 두 언니와 아버지가 가족여행을 하는 차를 얻어 타고 퇴계종택과 이육사문학관까지 함께 했다.
큰 언니가 결혼을 앞두고 세 식구가 마지막으로 함께 온 가족여행이라고 하시면서 아이스박스에 든 캔커피와 주전부리까지 챙겨주시고 같이 다니는 시간 동안은 나를 막내딸처럼 막냇동생처럼 예뻐해주셨던 분들.
이육사문학관 주차장에 도착. 연휴인 오늘치고는 주차장이 조금 한산하다 싶었는데ㅡ 주차하는 고 사이에 우르르 다른 차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어딜가든 피리를 불고 다니는 우리.

표를 끊고 들어서자 안내원 분이 홍보 영상을 먼저 보고 움직이겠는지 물어보셔서 잠깐 앉아 영상부터 감상했다.
아주 오래전 문학책에서 봤던 시인. 이육사. 원록이라는 이름을 대신해 자신의 수감번호를 필명으로 사용하며 글로 독립운동을 했던 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 아직도 떠오를 만큼 국어 시간에 중요하게 배웠던 시인인데 부끄럽게도 그 부분 외에 다른 명작들은 내가 너무 잊고 살았다는 걸 영상을 보면서 깨달았다.

벽 곳곳에 이육사 선생님의 명시들이 전시되어 있다. 영상을 보면서 다시 떠오른 광야ㅡ 백마타고 오는 초인에 빨간 밑줄 치고 광복, 독립이라고 필기했던 게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 힘든 감옥 생활을 계속 반복하면서도 독립의 의지를 꺾지 않은 민족시인. 감히 나는 상상할 수도 없는 애국심이다. 

본격적으로 전시관을 둘러보기 전에 재미있는 공간을 발견했다. 이육사 선생님의 여러 모습을 일러스트로 그린 표시 앞에는 저마다 모양이 다른 스탬프가 연결되어 있는데ㅡ 마련된 종이에 각각의 스탬프를 찾아가며 도장을 찍으면 이육사 선생님 그림이 나오기도 하고, 여러 주옥 같은 시의 한 구절이 찍히기도 한다.

이육사 선생님의 일생을 하나하나 자세히 보기 시작하는 길.

곳곳에는 글로 소리로 선생님의 시를 감상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는데ㅡ 눈으로 읽는 것도 좋았지만 소리로 듣는 것이 나는 개인적으로 더 와 닿았다. 시의 제목 밑에 있는 자그마한 스피커에 귀를 가져다 대면 그 시에 어울리는 톤으로 나즈막히 낭송되는 시를 감상할 수 있다.

이곳은 독립운동가 이육사의 모습을 더 가까이에서 옅볼 수 있는 공간이다. 벽면과 서랍을 열어 보면 숨어있는 시를 발견할 수 있는데 마치 독립군을 몰래 돕는 역할을 맡게 된 것만 같은 착각이 들게한다. 

비밀 임무의 수행 수화기를 들자 결연한 목소리로 3가지 미션을 준다. 빠르게 조용하게 확실하게 수행해야 하므로 목소리만 들어도 긴장감이 들었다.

청포도 색의 동글동글한 방명록 구간. 여러 사람들의 바람과 소망으로 이육사 선생님의 얼굴이 완성된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3.1절이라 이곳에 온 게 더욱 의미가 크다. 예전에 히치하이킹으로 왔던 날은 8.15 광복절이었는데 역사적으로 중요한 두 날에 이곳을 오니 더 좋았던 것 같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시절도 생각나고 옛 여행의 좋은 기억도 떠오르고ㅡ 잊고 있었던 시의 한 구절도 떠오르는 이육사문학관 방문기.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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