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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9_Anna
밥 먹고 이제 슬슬 체크인 시간.
아까 올 때 봤던 고분과 키큰 나무를 지나 황리단길로 간다.
옛날에 경주여행 왔을 때는 황리단길이 없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이리 유명한 거리가 생긴건지는 모르겠으나 꼭 한번쯤 와보고 싶었던 궁금했던 거리라 먼가 설렜다.
경주에서는 지난 남해여행과 달리 여기저기 걷고 돌아다니는 일정이 많을 것 같아서 철저하게 숙소는 쉼의 개념으로 골랐고 편안하고 안락한 분위기를 한 껏 누리를 수 있는 건 아무래도 한옥 숙소가 아니겠는가 싶어 찾아봤던 터.
안그래도 경주 숙소 찾으면 한옥 숙소가 많이 보이는데ㅡ 그 중에서도 우연히 내 눈에 들어와 확 꽂힌 곳은 바로 여기 '시은재'
모르겠다. 그냥 다른 여러 숙소에선 광고 느낌 강하고, 자연스러워 보이게 인위적으로 환경 세팅해놓고 마치 몰래 찍힌 듯이 연기하고 있는 사진처럼만 보였는데ㅡ 시은재 사진과 리뷰들에선 그런걸 못느끼고 마냥 끌리기만 했다. 그리고 마침 여행계획을 막 세우던 그 시기에 [예약가능]으로 표시되는 초록색 불이 여긴 운명이야! 싶은 마음으로 선택하게한 결정적 요소가 아니었나 싶다.
숙소 입구에는 정말이지 오랜만에 본 무궁화꽃이 피어있었고, 반쯤 열린 대문 사이로 초록초록한 나무가 보였는데 들어갈 때 은은한 꽃향기가 나는 게 기분이 참 좋았다.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내 키보다 조금 작은 소나무가 중앙에 있고ㅡ 나무 뒤로 ㄷ자 구조의 한옥이 마치 나를 품고 있는 듯이 안락한 느낌이 들게했다.
바람에 흩날려오는 풍경소리도 듣기 좋았고 잠깐 두리번 거리면서 조용한 분위기에 취해 있을 즈음. 마당 뒤켠에서 들려오는 상냥한 목소리. "어서오세요"하고 사장님 두분이 나오셨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3시가 조금 못된 시간이라 "저희가 좀 일찍 왔어요"라고 했더니 "거진 다 됐는데 뭘, 괜찮아요"'라며 미소짓는 사장님 인상이 너무 좋았다.
방문에는 예약자 이름표와 함께 손바닥 만한 자물쇠가 걸려있었고 자물쇠를 열고 문고리를 잡아 당겼더니 끼익하면서 창호 문이 열리고 아늑한 공간이 나타났다.

포근해 보이는 이부자리와 깔끔하게 정리된 거울과 옷걸이. 화장실에도 어메니티와 칫솔꽂이, 수건도 잘 놓여있었다. '편안하게 쉬었다가 갈 수 있겠군' 싶어서 참 고른 듯 했다.

이곳 시은재에서는 매일 아침 9시에 조식을 준비해 주시는데ㅡ 안타깝게도 두번째 날 우리 일정은 아침부터 너무 촘촘하게 시작이라 아침식사는 못할 것 같다 말씀드렸더니 우리보다도 더 서운해 하시는 듯한 사장님ㅠ 그래도 다행인건 우린 두 밤 자고 갈거라 셋째날 아침은 먹을 수 있었다는 것!
낮에 본 시은재도 예뻤지만 밤에 불이 켜지면 그 것 또한 고즈넉한 것이 분위기가 남달랐던 우리 숙소. 그냥 툇마루 나가 앉아만 있어도 시원하고 편안했다.

집에 있었으면 저녁에 피곤함을 씻고 나와 머리까지 후닥닥 정신없이 말리고선 쇼파에 기대 앉아 늦은 TV나 봤겠지만, 여기서는 씻고나와 마루에 앉아 바람결에 머리를 말리고 꽃냄새를 맡고 멍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흐뭇해했다.
마지막날 사장님이 준비해주신 아침식사.
토마토, 오렌지, 그리고 경주 명물 찰보리빵. 하얀 접시에 두개씩 보기좋게 담겨 있는 차림이 맘에 들어서 사진을 찍었더니 사장님은 옆에서 살짝 부끄러워 하셨다. 그렇지만 내 SNS에는 숙소 사진 중 1번으로 자랑하고 싶을 만큼 맛도 정성도 모양도 예뻤다.

식사를 마친 후 곧 체크아웃 시간. 혹시 체크아웃을 하고 나서도 짐을 맡겨둘 수 있는지 여쭤보고 오겠다던 오빠가 '와.. 사장님 진짜 너무 친절하시다'라며 얘기를 해주었는데ㅡ
서울로 돌아가는 7시 기차를 탈 거라고 말씀 드렸더니 여기서 20분이면 충분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6시 30분에 출발할 수 있게 택시를 미리 준비해 두시겠다고 하셨단다...! 우리가 할 일인데 죄송하기도 하면서 한 껏 감사한. 아마도 사장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6시쯤 돌아와 역으로 향했겠지. 경주에 머무를 수 있는 30분의 시간을 더 번 셈. 야호ㅡ
따뜻하고 아늑하고 편안한 기억을 많이 갖고 돌아가는 이곳 시은재. 다음번 여행에도 또 와서 머물러야지.

마지막으로 담벼락에 써있던 마음 쿵 울리는 한 마디.
쉬는 것이 곧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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