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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7_Anna

3일간의 연휴가 지나가는 오후.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부터 차마시고, 주전부리도 먹고 그렇게 그렇게 하루종일 집에서 뒹굴거리고 쉬다가 내일 출근을 할 줄 알았다. 

그래도 크리스마스가 껴있는 연휴였는데 집에서 꼬질이 상태로만 있다보니 그 흔한 기념사진도 조각케익 하나도 없이 지나가버리는 주말이다. 그치만 뭐 매년 오는 크리스마스고 별 의의는 두지 않기로 했다. 뭐 나름 재밌게 보냈으니까ㅡ

예전 같았으면 주말에 가볼 예쁜 카페, 예쁜 전시회, 보고 싶은 영화, 사람들이 많이 찾는 맛집을 하나씩 골라 데이트 코스를 짜는 재미가 쏠쏠 했겠지만, 이제는 배가 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심심하면 TV보고 아주 본능에 충실한 집콕 일상이 어느새 부턴가 너무 당연해 졌다는게.. 진짜 잊지 못할 2020년의 모습이지 않을까 한다.

날씨가 좋고 따뜻하다길래 가보고 싶었던 루프탑 카페는 이번주엔 갑자기 미세먼지가 심하다기에 다음주로 미루고 또 갑자기 거리두기를 지키라고 하길래 그 다음주로 미루고 미뤘더니 내년에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고, 11월 부터 얼리버드로 끊어놓은 미술전은 기간 내에 구경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집 안에서 생각지 못한 재미와 풍경을 발견하기도 했다. 

토요일이면 늘 하는 빨래지만 문득 창 밖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기에 문을 열어보니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고 있었고, 첫눈이 온다고는 했지만 잠든 사이에 왔다가 다 그치겠지'하는 생각으로 기대조차 안했는데 펑펑 함박눈이 내리고 있길래ㅡ 한 껏 신난 강아지마냥 오빠를 깨워 베란다로 데리고 나오기도 했다.

집에만 있자니 그래도 먼가 재밌게 보내고 싶은 생각에 같이 머리 맛대고 '뭘 해먹을까' 생각하다가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기도 했고, 그 중 몇개는 다음에도 해먹어 보고 싶은 [별거없는 레시피]로 나머지는 너무너무 '별거'있어서 다시는 집에서 하고 싶지 않고 전문 음식점에가서 사먹으리라 다짐하는 메뉴도 있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요리는 김치수제비.

오늘은 또 뭐 해 먹을까' 하다가 갑자기 수제비가 어떻겠냐는 오빠에게ㅡ

'오빠, 집에서 수제비 해먹어 본 적 있어?'

'아니.. 아~주 어릴때? 어머니가 해주신 것 같고 집에서 먹어본 기억은 잘 안나'

'그치? 그거 반죽 부터 하나하나 손으로 떼어서 만들려면 여간 기술이 필요한게 아니기 때문이지.. 베테랑 주부들도 집에서 잘 안하는 메뉴일텐데 그걸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야..?' 잠깐의 째려봄으로 오빠는 순간 풀이 죽었지만 결.국.

힘들었다.. 하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하지만 한.번.쯤.은 해보기 괜찮았다. 정말 딱 한번쯤은.! 그 다음 부터는 난 전문점에 가서 사먹을래. 그게 훨씬 맛있고 좋다. 

뭘 만들어 먹었는지 그래서 머가 재밌고 맛있었는지 레시피 적어놓는 것도 나름 나의 취미 중 하나인데, 김치 수제비 만큼은 너무 과정이 많았기에 [별거없는 레시피]에 적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 또 하나의 별거 많은 요리를 시도했으니. 바로 고구마 맛탕.

고구마 맛탕은 그냥 고구마 익혀서 올리고당에 버무려 먹기만 하면 되지 않나 싶어 선택했는데ㅡ 어느정도 맞는 말이지만 나는 레시피를 잘못 골랐다. 올리고당이 아니라 설탕을 이용해서 직접 시럽을 만들고 버무려서 닭강정처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설탕코팅 옷을 입은 고구마 맛탕 - '빠스' 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 

괜히 안 쓰는 에어프라이어도 꺼내 고구마를 익히고 레시피에 적힌 대로 설탕과 식용유를 넣고 직접 시럽을 만들었는데.. 우리집 에어프라이어는 너무 작고 귀여운 사이즈라서 여러번 고구마를 나눠 익혀야 했고, 설탕 시럽도 불조절을 잘못했는지 고구마가 코팅이 되긴 됐는데 겉이 너무 딱딱해서 아주 그냥 포크가 안들어가고 미끌어질 때마다 접시가 깨지는 줄 알았다.

달달한 고구마를 아침으로 먹고 나니 급 식욕이 돋아 오빠는 생일에 받은 쿠폰을 써가며 치킨까지 배달시켰고 그렇게 이것저것 잔뜩 먹어 배가 빵빵한 두명의 꼬질이는 소파에 널브러졌다. 

갑자기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오빠가 정적을 깨고 말했다.

'스타벅스에 쿠폰 쓰러 갈까?'

오빠도 나도 생일에 받은 스타벅스 기프티콘은 그간 카페에 갈일이 없었으므로 유효기간이 임박해져 오고 있었다. 집에서 타먹는 커피도 얼추 다 떨어져 간다 싶어서 물만 부어 먹을 수 있는 커피 상품으로 바꿔오면 어떨까 해서 급 외출을 해봤다.

3일만에 나온 오늘은 많이 춥지도 않고 딱 좋은 날씨.

커피만 바꿔가지고 돌아가려 했는데 그 옆에 던킨 도너츠가 보인다. 마침 우리에겐 또 하나의 쿠폰인 해피포인트가 있었고, 오랜만에 이번 크리스마스에 못 먹은 조각케익을 대신 해 도너츠를 몇개 골라보기로 했다.

그렇게 오늘은 생일쿠폰 탕진잼.

돈 쓰지 않고 나름의 먹거리들을 챙겨 돌아오는 길. 괜히 루트를 길게 잡아 옆동네 까지 다녀왔는데ㅡ 

출근길에 급한 걸음으로만 지나쳤던 옆동네 아파트는 이제 보니 지금의 우리집 보다 새집이고, 단지도 조금 크고, 알고보니 주변에 경찰서에 도서관에 초품아였다는 걸 알게됐다. 모르고 지나쳤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니 동네도 아파트도 참 괜찮은 것 같아 '우리 돈 열심히 모아서 여기로 오면 좋겠다'며 나름의 첫 임장(?)을 해봤다. 물론 부동산까지 들어가 시세를 알아본 건 아니지마능. 일단은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가면서 옆 동네부터 살펴보면 어느새 나중에는 진짜 바람대로 하나씩 자리를 옮겨갈테지.

그렇게 그렇게 별거없는 우리의 주말은 늘 같은 풍경인 듯 하면서도 나름의 재미로 채워져 가고 있는 듯 하다.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건 안타깝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하루 더 쉴 수 있고, 새해도 맞이할 테니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한 이번 주말도 이렇게 마무리.

연휴의 끝은 내일 도시락 반찬 준비. 그럼 이만 반찬 하러 숑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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