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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03_Anna
아침 일찍 일어나 터미널에 간다.
오빠와 나의 버킷 중 하나인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 체력 이슈로 마음을 먹고 당장 출발해도 아마 제대로 걷지 못할 거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틈틈이 체력을 키워두고 모든 상황이 준비가 되어 떠나게 되었을 때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만들고 싶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종종 걷기를 실천 중인 우리.
오늘은 우리나라에도 순례길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고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곳에 드디어 가는 날.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당진 합덕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만 가면 김대건 신부님의 탄생지인 '솔뫼성지'부터 시작하는 17km 정도의 순례길 코스가 있다고 해서 가봤다.


걷는 내내 느낀 건 표지판이 정말 잘 되어 있다는 것. 표지판이 워낙 촘촘하게 되어 있어서 길 찾기가 쉬웠다.
오빠는 휴대폰 앱도 다운로드했는데 길을 잃지 않게 코스를 한눈에 볼 수도 있고 방문하는 지점마다 실시간으로 스탬프 인증도 받을 수 있어서 편리했다.


17km라면 걷는데 어영 부영 천천히 5시간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10시 반쯤 터미널에 도착해서 일단 간단한 아침식사로 롯데리아를 호로록 먹고, 시원한 아메리카노 하나를 손에 들고 솔뫼성지를 향해 걸었다.
1. 솔뫼성지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사제 '김대건 신부님'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조경이 굉장히 예쁘게 되어 있고 생각보다 넓고 뻥 뚫린 경치가 좋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광지스러운 복작복작함이 아닌 경건함이 감도는 분위기다.




버그내순례길의 출발점인 솔뫼성지에 가면 문화해설사의 집에서 스탬프 투어를 위한 작은 책자를 받을 수 있다. 총 10개의 코스를 다 돌고 스탬프를 모아 저녁 5시까지 돌아오면 완주 스탬프와 함께 기념품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기에 도전!



2. 합덕제
출발점인 솔뫼성지에서 합덕제까지의 구간이 총 10곳의 스탬프 투어 장소 중 가장 먼 거리이다. 4.4km의 길을 지도를 보면서 천천히 걸어봤다. 오늘은 장날이 아니어서 조용했지만 중간에 시장도 지나치고 길 건너 논을 지나 쭉 걸어가는 길이 나무 그늘 아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참 좋았다.


합덕제에 다다르니 커다란 버드나무와 연꽃밭이 펼쳐진 풍경이 예뻤다. 민속마을처럼 꾸며져 있고 대형 파라솔도 곳곳에 보여서 가족 단위로 피크닉 나온 분들이 많이 보이더군.

3. 합덕성당
합덕제 뒤로 돌아가면 합덕성당이 있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아기자기한 느낌의 성당이었는데ㅡ 순례길 다 돌고 택시 탔을 때 기사님이 알려주시기로 100년 전에 일본 사람이 지었다고 한다.
합덕성당 가는 길에 보니까 부엔카미노 카페도 있다. 산티아고에서 하는 인사로 알고 있는데 한국에서 들으니까 새롭다. 그래서 이곳의 별명이 '당티아고(당진+산티아고)'인가 보다.



4. 합덕제 중수비
4번째 코스로 가는 길은 지도 앱을 따르지 않고 조금 더 빠르게 질러 갈 수 있을 것 같아 샛길을 선택해 봤다.
합덕성당 옆쪽에 학교가 하나 있었는데 학교를 왼편에 끼고돌아 가나면 다음 코스로 조금 더 빠르게 나갈 수 있다.

중수비에 가는 길은 마을을 하나 둘 지나치는데 길이 점점 더 조용하고 소박해지는 게, 풍경 달라지는 게 신기하고 기분 좋았다.

5. 원시장▪원시보 우물터
성동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샘이라고 한다. 원시장과 원시보는 사촌 사이인데 두 분 모두 순교하셨다고ㅡ
길을 걸으면서 여러 순교자분들의 이야기를 알게 될수록 어떻게 그 마음을 헤아리겠냐마는 그래도 조금씩 노력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씻어내려고 했다.


6. 무명 순교자의 묘
걸어 본 10곳의 장소 중 가장 여운이 깊게 남는 곳. 처음 시작할 때 솔뫼성지의 경건함과 고요함도 물론 좋았지만 소박하게 정리된 이곳도 참 좋았다. 관광지 느낌이 전혀 없고 그저 기도만 늘 가득할 것 같은 곳. 손자선 성인의 가족 순교지로 추정되고 있다고 하던데 우리가 갔을 때는 누군가가 예쁜 꽃다발을 놓과 가신 뒤였다.

7. 신리성지
버그내순례길의 모든 표지판은 '솔뫼성지 - 신리성지' 로 되어 있는데 드디어 솔뫼성지를 떠나 신리성지에 도착했다. 솔뫼성지만큼이나 넓고 살짝은 관광지 느낌이 들었던 곳, 사람들도 많았고 예쁜 카페도 미술관도 있는 하나의 문화 공간 같았다. 넓은 논을 지나서 저 멀리 높이 솟은 건물까지 걸어가는 게 살짝 힘들었지만 잘 가꿔진 잔디밭과 경치가 너무 예뻤다.



11시부터 3시까지 계속 걷기만 했더니 다소 지친 우리. 마침 예쁘게 생긴 대형 카페가 있어서 쉬었다 가기로 했다.
걸으면서 커피는 홀짝홀짝 마셔와서 먼가 이곳에서만 파는 시그니처를 골라봐야지 하는 마음에 신리 티 + 신리 에이드를 시켜봤다.


천장 골조가 그대로 드러나는 인테리어랑 투명한 테이블이 신기 방기하고 독특한 분위기였다. 더운 날씨에 15km를 걷고 와서인지 시원한 에어컨 바람맞으면서 쉬었다 가는 시간이 참 감사하고 소중했다.


자 이제 3개의 공소만 가면 10개 장소를 모두 방문하고 완주할 수 있는데 이때 매우 큰 고민에 빠졌다. 남은 거리는 그동안 걸은 것보다 훨씬 짧은 약 4km 정도 밖에 안 남았지만 5시까지 완주 도장을 찍기에 우리 체력이 괜찮을까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 막상 또 앉으니까 다시 일어나 걷기가 어려워진 것도 있다.
그래서 여기선 택시의 도움을 받기로ㅡ 신리성지는 꽤 유명한 관광지이고 차가 들어오기에도 크게 어려움이 없는 공간 같아서 택시를 불렀더니 친절한 기사님이 바로 오셨다.
8. 거더리공소
천주교에서 공소(公所)는 본당(성당)보다 작은 교회 단위로, 본당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주임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신자 공동체(또는 그 공동체가 모이는 장소)를 뜻한다고 한다. 거더리공소는 신리성지에서 불과 1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어서 충분히 걸어가기에 괜찮은 길이지만 택시 타고 가니 바로 슝 도착이다.
잠시 내려 둘러보고 스탬프를 찍을 시간을 충분히 주신 기사님 덕분에 편하게 둘러보고 나올 수 있었다.


9. 세거리공소
굉장히 오래된 느낌이 들었는데 1935년에 지어진 이곳에서는 판공 때가 되면 본당 신부가 머물면서 성사를 베풀고, 푸짐한 음식을 나누며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10. 하흑공소
마지막 하흑공소, 택시 기사님이 3곳의 공소 중 여기가 제일 예쁘다고 하셨다. 길가에 있어서 접근성도 좋다고ㅡ
세거리공소를 보고 난 뒤여서 그런지 하흑공소는 최근에 지어진 것 같은 새 건물 느낌이 든다.



마지막 장소인 하흑공소까지 5시에 방문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ㅡ 완주 기념 스탬프와 기념품을 배부하는 곳은 솔뫼성지, 합덕성당 성물방, 합덕수리민속박물관(합덕제) 이렇게 3곳이었다. 마침 택시를 타고 움직이고 있던 터라 편하게 솔뫼성지까지 다시 갔고 3곳의 공소와 솔뫼성지까지의 이동 포함해 택시비는 약 24,000원 정도 나왔다.
4시간 정도 시간 여유를 갖고 택시로 10개 코스를 모두 돌아다니는 투어도 있던데 우리처럼 걷기 보다는 각각의 장소를 방문해서 여유롭게 돌아다닌다면 좋은 일정이 될 것 같았다.
다시 돌아온 솔뫼성지,
아침에 만난 문화해설사님이 우릴 기억하고 계셨다. 신리성지까지는 걸었다고 말씀드렸더니 고생 많았다고 완주 축하한다고 박수도 쳐주시고 도장도 찍어주시고 예쁜 뱃지도 선물로 주셨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시간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어서 솔뫼성지를 조금 더 둘러보기로 했는데 곳곳에 수녀님들이 가꾼 예쁜 꽃들이 가득해서 너무 좋았다.
체력적 이슈는 있었지만 모처럼 조용하고 예쁜 길을 마음껏 걸을 수 있어서 좋았던 시간.
마냥 걷고 싶은 날에 아마도 자주 찾는 곳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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