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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31_Anna

올해의 마지막 날 기념비적인 데이트.

올 한해 우리 부부는 각각의 커리어에 변화가 생겨 결혼 후 가장 바쁜 한 해를 보낸 듯 하다.

바쁘다는게 좋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론 데이트 횟수가 많이 줄어 서로에게 미안하기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12월에 접어들면서는 어느정도 안정되면서 예전처럼 주말을 기다리며 데이트 약속을 잡는 우리로 바뀌게 됐다.

나의 취미 중 하나는 예정 전시회 일정을 살펴본뒤 얼리버드 티켓을 구매해 놓는 일인데ㅡ

사놓고도 바쁘단 핑계로 잊고 있던 티켓을 오빠가 대신 기억해 준 덕에 올 해 마지막 데이트는 전시회를 가는 것으로 정하게 됐다. 

94세의 로맨틱한 할아버지 앙드레 브라질리에의 그림을 보러가는 길.

그간 정신 없이 바빴던 프로젝트를 끝낸 오빠가 나 대신 데이트 코스를 짜주었는데, 미리 내가 주문한 컨셉은 예쁜 데이트였다. 분위기도 음식도 예쁜 것들로 가득 채워서 마지막 날을 기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무튼 그렇게 오빠를 믿고 따라간 곳은 이름부터 특별한 10월 19일.

100% 예약제로 운영되어 디저트 코스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 기대가 컸다. 생각보다 별로 춥지 않은 날씨에 예술에 전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 다음 일정 까지도 편리한 동선이 맘에 들었다.

오빠 손을 꼭 붙잡고 걷다 보니 빨간 벽돌 건물이 나왔고 

"저기다 저기!" 하는 오빠를 따라 들어갔더니 이름을 부르며 맞이해 주시는 사장님 목소리에 들뜸은 배가 되었다.

안내해 주신 자리에 앉기까지 코끝에 좋은 향기가 닿아서 기분이 좋았고 코트를 걸어 둘 수 있는 공간도 알려주시고 전체적으로 가게 안에 따듯하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감돌아서 편안했다.

미리 세팅된 자리에 3단으로 접힌 메뉴판이 있었는데 군더더기 없이 전체적인 모든 컨셉이 깔끔 그 자체였고 딱 내스타일.

와인도 즐길 수 있고 시그니처인 디저트 5개 코스와 특별한 음료도 있었는데 오빠가 미리 검색해 본 바로는 많은 분들이 '탄산소다'가 진짜 맛있다고 엄지척을 했다기에 우리도 한잔 골라봤다.

이름도 귀여운 THANK U BERRY SODA와 오가닉 피치 블로썸. 어디서도 보지 못한 귀염뽀짝한 비주얼의 음료를 건네받은 뒤 올한해 수고했다며 짠 한번 하고 들이켰는데 정말이지 맛있었다. 달달하면서 상큼한데 위에 올라간 폼 때문에 또 부드럽기도 하고 다른 손님들처럼 나도 소다 강추! 

평소 커피만 좋아하고 차는 별로 안좋아하는 오빠이지만 오늘 고른 오가닉 피치 블로썸은 향긋하고 맛있었다고ㅡ 작은 호리병에 나온 모양새도 너무 귀여웠고 말이지.

음료에 만족하며 가게안을 두리번 거리고 구경하기도 잠시. 곧 1번째 요리부터 서빙되었는데.!

알록달록하고 동그란 펄 젤리 같이 생긴 조각들이 어우러진 예쁜 셔벳을 받았다. 먹어보기 전에도 먼가 상큼할 것 같은 비주얼이었는데 모양 만큼이나 맛도 좋았다. 머랄까 진짜 상큼하고 개운한 맛..?! 디저트를 먹고 개운한 경험이 나는 개인적으로 많지 않은데 입이 싹 씻기는 기분에 맛있음이었다.

다 먹고 나서 접시에 남은 소스가 알록달록 한 것까지 예뻐보이는 그런 음식.

첫 음식의 감동이 끝나기 전 또또 예쁜 음식이 등장. 

두번째는 벚꽃을 접시에 소복하게 담아주신 것 처럼 핑크핑크하고 여리여리한 모양이었다. 시원하고 달콤한 딸기맛이었는데 안에 또 아까의 사과 셔벳과는 다른 셔벳이 있었고 식용 꽃까지 어우러지니 정말이지 모양도 맛도 예쁘고 예쁜 그런 음식이었다.

세번째 음식은 내가 평소에도 참으로 좋아하는 와플.! 그치만 익숙한 와플과는 완전히 달랐다. 바질 크림 치즈와 토마토잼이 어우러지니까 달콤하면서 짭쪼롬하면서 향긋하면서 진짜 어디서도 못 먹어본 너무 특별한 맛이었다.

서빙해주실때 토마토 잼이 작은 쌀 되에 담겨있었는데 음식의 맛도 맛이지만 디자인까지 곳곳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신 것 같고 하나하나 진짜 대접받는 기분이 너무 만족스러웠다.

네번째는 바삭하고 부드러운 크로켓에 진짜진짜 너무 보드라운 스프 세트.

그냥도 먹어보고 곁들여주신 마요네즈도 찍어 먹고 마지막으로 스프에도 담가먹어봤는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부드러운 크로켓도 참 맛있었고 같이 주신 스프가 너무 부드럽고 맛있었다. 부드럽다는 텍스처로는 설명이 부족하고 보들보들한 기분이 드는 그런 느낌이었다.

벌써 마지막인게 참 아쉬웠지만 그만큼 오늘 코스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었던 다섯번째 음식은ㅡ 상자를 열어주실 때 부터 훈연냄새가 코를 톡 찔렀던 시가칩.

진짜 시가칩같은 모양에 먹는 재미가 있었던 요리고 이전 음식들 처럼 맛도 굿이었다. 파우더에서 김맛이 났는데 디저트에서는 먹어보지 못한 개운한 맛을 첫 코스부터 계속 느꼈던 것 같다.

우리가 음료와 5가지 음식을 먹으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아무래도

"우와ㅡ 예쁘다" 였겠지. 아까워서 어떻게 먹나 싶어 이리보고 저리보고 하다가도 어느새 한입 먹어보면 '맛있다'로 반응이 바뀌면서 어느새 '다먹었다'가 되는 "예쁘다 > 아까워 > 맛있다 > 다먹었네"의 반복 코스.

사실 디저트를 코스로 먹어본 적이 없었던 터라 조금 부담스럽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앞에서도 살짝살짝 말했듯 디저트임에도 상큼하고 개운한 맛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너무 달다거나, 느끼하다거나 그래서 부담스럽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다. 특별히 기억하고 싶은 데이트를 위해 찾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장소. 그래서인지 우리 말고 다른 손님들도 모두 커플이셨다. 

가게 이름이 10월 19일이라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사장님께 여쭤봤는데 두 분의 결혼기념일이시라고ㅡ 우리 결혼기념일도 19년 10월 19일이라 되게 반갑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우리의 뜻깊은 날에 그 날을 기억하고 기념할만한 멋진 장소가 있다는 게 기분 좋고 감사했다.

다음 결혼기념일에는 가을 코스를 먹으러 가봐야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음식으로 코스가 달라진다던데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은 또 어떤 새로움이 있을지 기대가 되네ㅡ

올해의 마지막이 아주 특별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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