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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30_Anna
"우리 내일 데이트하자!"
생일 주간을 맞음에도 바쁜 업무 때문에 주말 없이 일만 하던 오빠가 어제저녁 갑자기 데이트를 제안했다.
일이 바빠 보이는데 괜히 신경 쓰는 듯해서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데이트라는 단어가 반갑고 설렜다.
갑자기 데이트 코스를 어디로 짜야 하나 싶은 고민은 없다. 왜냐면 평소에 가고 싶은 데가 워낙 많고, 여기 가는 김에 저기도 가야지 하면서 동선 생각해 놓는 것도 내 취미이기 때문.
오늘은 보고 싶은 전시회에 가볼 생각ㅡ 주황색의 포스터가 눈에 들어와서 얼리버드를 끊어 둔 '장 줄리앙 그러면 거기'

오픈 어택을 하면 조금 더 여유롭게 보겠지 싶은 마음에 아침 일찍 일어나려고 알람도 해두었지만 주말의 맛은 뭐니 뭐니 해도 늦잠인 것. 알람 끄고 조금 더 밍기 거리다가 느지막이 준비하고 나선 것도 뭐 그리 나쁘지 않다.
왠지 다른 전시장보다도 먼가 더 핫하고 젊은 분위기가 뿜뿜일 것 같은 동대문. 역시나 도착해 보니 미술 전공 학생처럼 보이는 젊은 분들이 많았다.
오픈한지 얼마 안 된 나름 이른 시간임에도 줄 서 있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역시 인기 전시회군' 싶었던.
우린 미리 예매한 내용을 보여드리고 핑크색의 귀여운 티켓을 받아들었다.

입구에서 보니 무료로 오디오 안내를 들을 수 있다던데 아쉽게도 오늘은 둘 다 이어폰을 소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용할 수없었다. 오디오 안내는 신분증 맡기고 돈 내고 들었는데 무료라니 먼가 신선?! 대단?! 한 느낌이었다.
전시장 들어서자마자 이번 전시 포스터로 쓰인 주황색의 일러스트 벽이 등장.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들어가느라 잠깐의 지체가 있는 구역. 하지만 온 김에 그리고 본격적으로 다른 그림들 보기 전에 도장 꽝 찍고 들어가는 게 나름의 재미와 기념이 될 테니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잠시 시간을 내어 기다려 보았다.

코너를 돌아 들어가면 100권의 스케치북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스케치 100권이라니.. 대단하다. 작가는 평소에도 스케치북을 여기저기 들고 다니면서 보고 떠오른 짧은 순간들을 기록하고 그리는 듯했다. 그래.. 대학 때 늘 교수님이 하시던 말씀인데 실제 실천하는 사람 거의 처음 본 것 같다. 한때는 나도 스케치북 들고 다니면서 그려야지, 그려야지 노력하던 때가 있었지만 해야 돼!라는 강박을 느껴서 인지 말도 안 듣고 안 했던 나 자신을 뭔가 반성하게 하고 작가에 대한 존경심이 드는 순간이었달까ㅡ

100권의 스케치북마다 작가가 직접 그 스케치북에서 가장 보여주고 싶은 페이지를 펼쳐두었고, 스케치북 위 빈 벽에는 빼곡하게 일러스트와 코멘트를 적어놔서 전시공간이 작가의 아이디어로 꽉 찬 느낌을 주고 있었다.
곧이어 보게 되는 드로잉 존에서도 마찬가지의 느낌. 검은색의 벽을 프레임 삼아 줄 맞춰 붙어있는 여러 그림들은 각각의 벽마다 다른 느낌을 주고 중간중간 맘에 드는 또는 눈에 확 들어오는 최애 그림을 발견할 때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보게 되는 곳이었다.

전시회 가면 오랫동안 그림 앞에 서 있는 나를 기다리게 마련이던 오빠가 시간을 더 달라며 하나하나 꼼꼼히 더 보고 싶다고 말하는 첫 전시회였다.
흑백 계열의 스케치와 드로잉을 지나면 다음에는 알록달록 색이 가득한 공간으로 이동. 그림의 결은 이전 스케치처럼 재치 있고 이해하기 쉬웠지만 색이 들어가니 조금은 더 화려하게 느껴졌다. 여러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MONDAY 글자에 매달려 있는 사람의 안쓰러움(?)과 떨어뜨린 아이스크림과 강아지똥의 싱크로율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겠는 웃픈상황에 대한 공감이었다. 아! 자기 등에 직점 점을 그려 넣는 강아지도 먼가 더 사랑받고 싶어 하나? 싶으면서 귀엽고 짠한 마음이 동시에 드는 그림이었다.

작가의 그림뿐 아니라 영상도 볼 수 있었는데 짧은 영상과 함께 사용된 그림 조각들이 같이 전시 회어 있어 아.. 이런 작업으로 결과를 이렇게 낼 수 있구나. 독특하다. 싶은 생각이 들면서 귀여웠다.

조형물 옆에서 같이 사진도 찍고 점점 더 그림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나도 순간 작품이 될 수 있는 PAPER PEOPLE을 만날 수 있다. 한면이 거울로 된 공간에 이런 저런 다양한 포즈로 서있는 작품들이 귀엽고 발랄한데ㅡ 그 사이로 들어가 작품 옆에 서서 사진도 찍고 하는 재미까지 있는 곳이었다.

다음엔 또 뭐가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이동해 보니 갖고싶은 것 투성이인 오브젝트들이 가득했다. 특히나 나는 서핑도 안하고 보드도 안타는데 저게 왜저렇게 갖고 싶던지ㅡ 하긴 하나 갖고 있어서 아까워서 어디 타겠나 싶었지만 그 만큼 하나쯤 소장하고 싶은 보드들. 밝고 선명한 색상과 선굵은 일러스트가 어떤 오브젝트가 되어도 다 잘어울리는 것 같았다.

가족과의 즐거운 순간을 표현한 공간을 지나 작가의 회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전에 보던 스케치와 포스터의 진한 색감과 달리 더 부드럽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자연과 가족에 대한 표현을 볼 수 있었다. 정말이지 표현하는 스펙트럼이 넓은 작가 같아서 멋지고 부럽기도 했다 :)

그렇게 모든 그림을 보고 마지막 마무리로 여러 굿즈를 만나볼 시간. 일러스트가 여러 다양한 오브젝트에 잘 녹아든다 싶었던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은 아니었던 듯. 여러 전시회 다녀봤지만 굿즈 코너에 사람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볼 정도였다.

즐겨모으는 핀으로다가 홀린듯 굿즈 구매 :)

어디선가 본듯한 그림이지만 작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왔던 전시지만 맘에 드는 좋은 작가를 알게 된 것 같아 좋았다. 이번 장 줄리앙 전시가 인상 깊었던 건 곳곳에 작가의 참여가 참 많이 보여서 좋았다는 것. 100권의 스케치북을 일일이 펼치고 빈 벽을 스케치로 가득 채우고, 관람객들이 보게 되는 안내 멘트까지 직접 그리고 적어 놓아서 더 감동적이고 사랑스러웠다.

무튼 오늘 100권 스케치북에 큰 감동. 나도 매일 열심히 살아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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