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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3_Anna

신혼여행 4일차. 여행의 딱 중간 시점.

어제도 데이투어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고 여행 와서 느긋하게 아침을 맞이한 날이 없어 오늘은 조금 여유를 가져보기로 했다. 처음 숙소에 도착해 안내받을 때도 하루쯤은 여기서 아침식사를 해도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 계획을 오늘 아침으로 잡아봤다. 식사를 마치고는 천천히 9시쯤 오늘 여행의 목적지인 데카포 호수를 향해 떠날 계획.

신혼여행 일정을 짤 때, 데카포 호수와 선한목자교회는 퀸즈타운에서 꽤나 거리가 있고, 마땅한 데이투어 상품도 못찾는 바람에 포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빠는 신혼여행인 데다가, 혼자 무리해서 운전을 하게 되더라도 나랑 같이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면서 일정을 강행하게 됐다. 그래도 거리상으로 약 300km 정도를 운전해서 가야 하는 만큼 둘다 걱정이 앞섰다. 운전을 직접 할 오빠가 긴장을 많이 했겠지만 티 안내고 오히려 날 다독이면서 운전대를 잡았다.

오늘은 뉴질랜드에서 본 하늘 중 가장 맑은 날. 차를 타고 달리는 기분이 너무 상쾌했다. 퀸즈타운 시내를 떠나면서 본 와카티푸 호수도 예뻤지만 곧 보게될 데카포 호수는 또 어떤 모습일지. 기.대.기.대.

한국어 지원이 안되어 실망감을 안겨줬던 네비게이션을 다시 켜고 시키는 대로 방향을 잡아 달리는 길. 어랏?! 그런데 생각보다 가는 길이 괜찮겠다 싶은게... 시내를 벗어나자 계속 직진이란다. 화끈하게 160km 가서 우회전하라고..! 영어로 쏼라쏼라 거려서 우리의 정신을 쏙 빼놀까봐 걱정했던 네비게이션 안내 목소리는 진짜 간간히 어쩌다 한번 들리는 꼴이고 운전해서 가는 내내 조용했다.

창밖으로는 양들이 뛰놀고, 어제 눈이 와서인지 저기 멀리 시야가 끝나는 지점에는 산꼭대기에 눈이 쌓여 있는게ㅡ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면 봄인것도 같았다가. 저쪽으로 돌리면 한겨울인 것 같았다가.. 풍경이 시시각각 바뀌는게 구경할 맛이 나는 경치였다. 

사실 오빠는 운전해서 가는 길 내내 풍경이 계속 똑같아서 지루할까봐, 그러다 졸릴까봐 그게 걱정이었다고도 했다. 그런데 가는 길이 이렇게 예쁘고 다이나믹할 줄이야?! 가끔 만나는 양과 소떼를 볼때마다 어어어어!!! 양이다 양! 어어어어 소!!!! 소소!! 하면서 쫑알 대는 나 때문에 살짝 졸릴 겨를 조차 없어보였다. 

가는 길이 너무 예뻐서 나는 옆에서 계속 셔터를 눌렀고, 오빠도 운전이 어느정도 적응이 됐는지 자기야 오른쪽봐 오른쪽! 저 끝에 봐봐 저 끝에!! 하면서 달렸다. 우리 앞에 가고 있는 차는 어쩌다 한번씩 가끔 발견할 정도로 길에는 차도 없고 오빠랑 나 딱 둘뿐인 것 같았고ㅡ 가끔씩 우리 뒤에 못보던 차가 뜬금없이 나타나면 어떻게 비켜줘야 되나 우리 속도가 느린가' 싶기도 했지만 왼쪽으로만 붙어서 제 속도로 달리면 알아서들 오른쪽으로 비켜 가곤 했다. 아마도 이런 경치를 매일같이 봐서 우리처럼 구경하면서 달릴만한 시간 여유를 갖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었을까? 어떻게 이 경치를 달리면서 저렇게 빨리 갈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달리고 달려 특별하게 여긴 정말 예쁘다?! 싶은 곳에 다다르면 잠깐 차를 세워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ㅡ 어디가 예쁘고 유명한 스팟인지 잘 모를 때는 지나가다가 '차들이 좀 서있는 것 같다..' 싶은 곳에 따라 서면 거기가 바로 스팟이었다.

한없이 평화롭고 한없이 맑은 풍경. 가끔씩 만나는 양떼들을 볼 때면 '시편 23편'의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가 생각이 날 정도였다. 성격에 나오는 그런 풍경이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달리고 달려 아직도 갈길이 한참 남았지만 곳곳에서 발견한 예쁜 장소에 계속해서 멈추는 우리였다. 데카포 호수까지 가는 길에 푸카키 호수도 있다고 했는데, 어차피 호수 갈껀데 거긴 그냥 패스하자'라고 했었지만 호수 가까이 다다르자 앞선 차들이 하나같이 옆길로 빠져 차를 세우길래 우리도 따라 내려봤더니, 세상에....! 물 색깔이 어쩜 이래..? 안 보고 그냥 갔으면 후회할 뻔한 모습.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청량감의 풍경이었다. 그냥 지나칠뻔한 호수 모습이 이 정도인데, 최종 목적지인 데카포 호수는 또 어떤 모습일지..! 

기대감을 가득 안고 다시 출발. 가는 길에 만나게 된 휴게소 같은 공간에서 새끼양들도 보고 여행지에서 즐겨 모으는 기념 뱃지도 구매했다. 그렇게 300km를 달려 드디어 도착한 데카포 호수.

물 색깔은 정말.. 누가 파워에이드를 부어놨나? 싶은.. 포카리스웨트 광고의 그 파란색과는 또 다른 깨끗함, 그 자체ㅡ 이 풍경을 보려고 날 데리고 이곳까지 운전해서 와준 오빠한테 진짜 고마웠다 :) 아까 본 푸카키 호수보다는 조금 더 큰 느낌?! 저 멀리 수평선에 눈 덮힌 산 뒤로 파란 하늘에 흰 구름까지. 물과 하늘의 경계가 애매할 정도의 짙고 맑은 파랑색이 너무 말도 안되는 풍경이었다.

호수 옆에 작게 자리 잡은 선한목자 교회. 파란 호수 위로 작은 교회가 서있는 게 참 예뻤다. 교회 내부는 사진을 찍을 수 없었지만, 교회 안의 창을 통해 호수를 바라본 모습이 꼭 액자에 걸린 그림 같았다.

오빠와 나는 호수 가까이까지 내려가 미리 준비해 온 삼각대를 설치하고 사진을 찍었다. 부케를 들고, 여행 토퍼도 들고 둘이 호수를 배경으로 꽤나 많은 셔터를 눌러댄 것 같다. 그럼에도 사진찍기를 멈추는게 참 쉽지 않을 만큼 너무 예쁜 배경이었다. 오빠는 사진찍기를 마치고 호수 물에 손을 담가 보고 싶다며 조금 더 물가로 내려갔는데, 오빠 따라 담가보니 물이 엄청 차가웠다. 

아침부터 줄곧 달려와 이 곳에 도착하니 어느덧 점심때였고, 우리는 호수가 잘 보이는 한 식당에 들어가 피쉬 앤 칩스를 먹었다. 운전하고 가야하니 술은 안되고 멀 먹으면 좋나 생각하다가, 레몬라임비터 한잔에 콜라 한잔을 주문해봤다. 한국에서는 별로 먹어볼 일이 없던 레몬라임비터. 이것도 집집마다 맛이 다 다른만큼 오빠한테 한입 먹어보라며 시켜줘봤더니 시원하니 맛나다고 좋아해줘서 다행.

어제도 먹었던 오늘의 스프는 또 똑같이 호박스프.. 한국에서 먹는 오뚜기 스프 같은걸 먹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그런맛은 찾지 못했고 대신 호박향이 진하고 더 걸쭉하면서 깊은 맛이 나는 호박스프를 여행 내내 자주 먹게 되었당 :)

퀸즈타운에 머무는 여행자들 중에서는 데카포 호수에서 하루를 보내고 밤에 호수 위로 떨어지는 많은 별을 보곤 한다던데, 우리는 그걸 여행계획을 다 짜고 나서야 들어서..a 아쉽게도 오늘밤 호수에 떨어지는 많은 별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어서 아쉽지만, 언제고 다시 뉴질랜드를 찾아 데카포 호수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약속했다. 

언제고 다시 꼭 찾고 싶은 뉴질랜드. 너무 맘에 드는 신혼여행지 :)

https://goo.gl/maps/MYu3NLjttPvP52ZD7

 

선한 목자 교회 · Pioneer Drive, Lake Tekapo 7999 뉴질랜드

★★★★★ ·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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