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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2_Anna
오늘 저녁은 외식.
회사 앞까지 데리러 나온 남편과 비싼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생일맞이 주말이라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는데 뭘 먹으러 가는 건지도 안 알려주고 일단 회사 앞으로 데릴러 갈 테니 칼퇴하고 나오라는 오빠.
평소에도 늘 그렇다만 오늘 따라 유달리 컴퓨터를 빨리 끄고 후닥닥 내려가 남편을 만났다.
외식 장소는 회사에서 멀지 않은 여의도 내 샛강역 근처.
식당 입구에 들어서는데 식당이라기 보다는 먼가 미니 갤러리 같기도 하고.. 처음 접하는 독특한 분위기.
근사한 저녁식사를 할 이곳은 바로 sutimoon이다.
전체적으로 되게 진한 회색인 공간. 미니멀 한듯 한데 먼가 모를 오묘한 분위기로 공간은 또 꽉찬 기분이었다.

파인다이닝 몇번 안먹어 본거 티나는 우리. 너무 친절한 분위기에 오히려 살짝 긴장한 상태로 안내 받은 자리에 앉았다.
네모 반듯하게 모서리가 딱 떨어지는 테라조 무늬 테이블 위에 드라이 플라워 장식이 멋스러웠다. 향긋한 물수건을 하나씩 받고는 손 닦고 밥 먹을 준비 하면서 테이블 구경을 본격적으로 하는데 CD크기만한 원형 카드에 수티문 컨셉 설명이 적혀 있는게 제일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는 한식 다이닝을 선보이는데 4가지의 챕터로 각 챕터마다 3가지의 음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챕터가 바뀔 때 마다 새로운 원형 카드를 옆에 꽂아 설명해 주신다.
첫번째 챕터는 GREEN PARADISE.

이름에 걸맞게 테이블 위가 금방 푸릇푸릇 해졌다. 첫 챕터이다 보니 먼가 입맛 돋구기에 좋은 상큼 새콤한 맛의 음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듯. 핑거 푸드 위에 올라가는 무스는 직접 이동식 테이블을 가져와 우리 눈 앞에서 만들어 올려 주셨는데 신기방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세상에' 하고 호응을 해버려서 살짝 부끄럽기도 했다.
모양도 모양인데 맛도 좋은 음식들 한입에 먹기 좋은 작은 사이즈로 여러가지 음식을 먹어 볼 수 있어서 입짧은데 식탐은 많은 나 같은 스타일에겐 딱이랄까ㅡ

눈으로 보는 만큼 맛도 상큼하고 싱그러운 첫 챕터 만족쓰.

두번째 챕터는 TREASURE OF THE WAVES.
생선 요리를 본격적으로 먹어 볼 수 있는 챕터였다. 첫번째 챕터가 초록 초록 이었다면 이번은 조금 더 색이 다양해진 느낌. 챕터에 대해 소개하는 파도 사진 원형 카드에 알록 달록한 해조류와 음식들. 그리고 아까보다 더 화려해진 드라이아이스쇼 까지 바닷속 느낌 물씬 나는 장식이 돋보였다.

이런데 올 일이 있어야 먹을 수 있는 랍스타ㅡ 오동통하고 새빨간 것이 참 먹음직 스럽게도 생겼다. 삼지창을 닮은 포크에 끝이 뭉뚝하고 특이하게 생긴 칼로 슥슥 자르는데 겉이 참 탱탱하고 쫀뜩한 것이 자르는 순간부터 손끝에서 느껴졌다.
맛은 모ㅡ 말해 뭐해. 예쁘게 생긴게 맛도 좋아서 역시나 기분이 좋아졌다.

캐비어가 담긴 계란찜 같기도 하고 짭짤 고소한 게살스프 같기도 한 음식도 참 부드럽게 목넘김이 좋고 맛있었고, 가리비 사이에 조개마냥 올라가 있던 마카롱같이 생긴 핑거푸드도 크림이 되게 고소하고 많이 달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게 입맛을 돋궈줘서 좋았다. 겉에는 녹차가루였을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손에 묻어난 가루가 맛있고 아까워서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쪽 하고 빨아먹고는 내가 내 행동이 어색해 빵터지고 말았다.

세번째 챕터는 GLORY OF HEAVEN.
짙은 파란색의 원형 카드가 인상적이었던. 가장 맘에 드는 모양의 챕터 소개 카드였다. 깃털에서 살짝 눈치 챌 수 있듯 이번 챕터의 주재료는 닭, 오리, 꿩이었다.

잘 구운 오리 스테이크와 먼가 새 둥지 위에 검은 알이 올라간 듯한 핑거푸드. 약간 물고기 같이 생긴 것 같기도 한 귀여운 만두st 요리가 나왔다.

오리가 소스도 소스였지만 그 자체로 훈연이 잘되고 겉은 바삭 속은 쫄깃 촉촉하게 너무 잘 구워져서 칼질을 할 때부터 기분이 좋았었다. 붉은 고기 옆에 초록초록한 나뭇가지가 하나 올라와 있는데 가지 끝에는 고기를 다 먹고 입가심 할 수 있는 피클이 한 조각이 꽂혀있었다. 작은 한 조각 이었는데도 진짜 입가심용으로 딱인게 입안이 개운해졌다.

둥지 위에 검은 알 같은 푸드 핑거는 겉이 딱딱해보였는데 손으로 집었을 때 부터 생각보다 겉이 촉촉한 게 예상치 못한 식감에 예상치 못한 맛이었다. 한입에 다 먹어버리기에는 조금 아까운 기분이라 앞니로 살짝 깨물었다가 안에서 크림이 팡 하고 터지는 듯해서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겠노라' 한 입 가득 털어넣고 맛을 맘껏 느꼈다.

네번째 챕터는 RICHNESS OF THE FEAST.

내가 젤 좋아하는 고기와 국수다. 소담하게 담긴 국수 한그릇에 제일 눈이 갔는데 역시 잔치에는 국수지ㅡ
고기로 맛을 낸 국수에 장아찌가 정말 신의 한수였다. 국물이 진하면서도 끝에 살짝 개운하게 느껴지게 한 건 바로 장아찌를 곁들여서 였던 듯 하다.

꼬치가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예쁘게 생김. 진짜 먹음직 스럽게도 생겼다.
손으로 들고 고기를 한입 베어 물었더니 소스에 촉촉하게 적셔진 고기가 부들부들한 것이 어찌나 맛나던지ㅡ 같이 곁들여 먹을 파 장아찌는 진짜 생각지도 못한 깔끔함에 오빠도 나도 너무 감탄했다. 사실 모양만 봐서는 그냥 구운 대파 정도의 맛이 나겠거니 싶었는데 진짜 상큼하다. 내가 알던 파 맛이 아님.

핑거 푸드는 육포라고 하셨는데 이것도 역시나 어디서도 먹어본 적 없는 식감이었다. 약간 소보루처럼 보슬보슬한데 짭쪼롬하게 고기맛이 풍겨 나오는게 진짜 신기방기한 맛잇음.

모든 챕터가 끝나고 이제 밥 다 먹었으니 집에 가나보다 했는데 웬걸?! 마지막으로 식사가 있단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와서 밥먹을 때 놀라는게 실컷 이것저것 다 먹었는데 "마지막으로 식사는 어떻게 드릴까요?" 물어볼 때 라는데 나 역시 그랬다. 이미 한 껏 배가 부른데 밥이 나온다니ㅡ 그것도 한상차림이다.
나무 채반에 국과 반찬이 정갈하게 담겨있고 귀엽게 생긴 작은 솥단지를 별도로 준비 해주시는데 안을 열어보면 노릇노릇한 생선 구이가 올라간 푸릇푸릇한 밥이 담겨있다.

밥은 직원분이 직접 소스 넣어 맛있게 비벼주시고 한 그릇씩 그릇에 담아 주신다. 
첫 식사인듯 마지막 식사인 저녁 밥상.
이렇게 생선구이 올려 비벼 먹는 밥은 처음먹어 보는데ㅡ 오빠가 한 입 먹더니 하는 첫 마디가 "밥이 바삭바삭해" 였다. 쪽파가 가득 들어있고 밥도 고슬고슬 잘 지어져서 그런지 진짜 밥이 씹을 수록 먼가 바삭바삭 한 것 같았다. 향긋하고 짭쪼롬한게 밥 자체로 너무 맛있었다. 
같이 먹는 반찬도 하나하나 맛이 깔끔하고 좋았다. 조개 들어간 된장국은 깔끔하고 시원한 맛.

이제 진짜 진짜 식사는 다 마치고 디저트 시간.
생각하지 못한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는데ㅡ 오빠가 예약 하면서 오늘 생일이라고 했더니 특별히 내 디저트 접시에는 생일 축하한다는 문구를 적어주셔서 더 뜻깊고 예뻤다.
보이는 것 처럼 맛도 고소한 아이스크림. 저녁 시간이라 밤에 잠 못잘까봐 오빠랑 나랑 둘다 커피 아닌 차를 골랐는데 이름이 '달빛걷기'란다. 배 향이 살짝 나면서 끝맛이 싱그럽고 깔끔했다.

음식 뿐 아니라 데코레이션에도 신경을 많이 쓴 듯 하다. 맛과 향 뿐 아니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 가면서 모든 감각으로 느끼는 식사였던 것 같다.
파인다이닝의 특징이라면 전체적으로 음식이 다 먹기 아깝게 예쁘게 생겼다는 것. 세상에나 이 아까운걸 어떻게 먹나 싶고 어떻게 이런 음식을 만드셨나 싶었는데 막상 또 한입 먹어보면 너무 맛있어서 빈접시가 쌓여가는게 매력 아닐지.
그래서 4개의 챕터를 만나는 동안 다른 듯 비슷한 '음식이 있었다가 없어졌다ㅡ 어디갔지 샷'이 쌓여갔다.

특별한 날 큰 맘 먹고 온 만큼 크고 길게 여운 남는 행복한 저녁식사.
눈도 입도 신나고 즐거워서 기분이가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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