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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6_Anna

오늘의 데이트는 바라고 바라던 이색 카페가는 날.

한참 전에 TV에서 이색 공간으로 소개 된 한 카페를 보고 그 전부터 줄곧 오빠한테 가고싶다고 얘기해 왔던 곳에 드디어 가게 된다. 공중목욕탕으로 사용되었던 공간을 개조해서 새롭게 카페로 만들었다고 하는 '행화탕'이다.

오빠랑 나는 SNS나 인터넷, 혹은 TV에서도 가끔 특이하고 가보고 싶은 곳이 생기면 데이트 버킷 메모에 추가해 두었다가 하나씩 하나씩 지워가는데, 보통 하루 데이트 코스를 '밥 > 영화, 연극 또는 산책등의 활동 > 카페놀이'로 잡고 밥은 여기서 먹었으니 그 근처에 가보고 싶었던 카페가 있었나 버킷 메모를 훑어보면서 이동 경로를 정하곤 했다.

우리가 그동안 가보지 않은 동네인 애오개 에 있는 '행화탕'은 여의도에서 놀다 가기에도 애매했고, 상암 하늘공원 쪽에 갔을 때도 그랬고ㅡ 심지어 마포에서 식장을 알아봤을 때도 가기가 애매해서 못가고 못가고 아껴두게 됐었다. 물론 가면 갔을 수도 있지만 하루 데이트 코스 중에 그냥 스쳐지나가는 카페로 가기에는 너무 독특한 공간 일 것 같아서 가서 차만 후딱 마시고 오기엔 아깝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아예 카페투어 만! 데이트 코스로 잡고 일부러 찾아가 오래오래 자리를 잡고 앉아 충분한 카페놀이를 해보기로 한 것이다.

처음 가보는 동네라서 조금 설레기도 하는 기분. 신길에서 5호선을 갈아타고 마포를 넘어가는 게 얼마나 오랜만인지 모른다. 원래는 애오개 역에서 시간 맞춰 만나기로 했지만 신길에서 우연(?) 하게 오빠를 만나 같이 가게 되었다.

약속 시간에 살짝 늦을 까 싶어 카톡도 안보고 지하철을 갈아타러 후다닥 내려오는데 누가 뒤에서 쓱ㅡ 다가오는 바람에 어찌나 깜짝 놀랐는지. 사실 오빠는 내가 갈아타러 내려올 것을 미리 예상하고 기다렸다가 훅 지나가는 나를 보고 뒤따라 왔던 것 :) 원래는 내가 숨어있다 오빠 뒤에서 짠! 하고 나타나며 놀래키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인데 오늘은 반대로 되었다. (다음엔 가만 두지 않겠어ㅡ)

얼마 가지 않아 애오개역 도착. 1번 출구로 걸어나가 곧 우리가 찾는 '행화탕' 발견

노랗게 페인트가 칠해진 낡은 벽에 굴뚝까지ㅡ 정말 오래된 목욕탕 건물 느낌 그대로였다.

문을 슥 열고 들어가는데 생각보다 문 전체가 회전문 처럼 돌아가면서 열려서 살짝 깜짝 놀랐다.

가게의 안과 밖 모두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벽돌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가기 전 부터 제일 걱정 했던 부분은 이색카페인 만큼 우리처럼 일부러 이곳 저곳에서 찾아와 사람이 너무 많고 자리도 없으면 어떡하나' 였다. 그래도 다행히 해가 가득 들어오는 창가 자리에 한 테이블이 남아있어 그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주문을 하러 가는 길에 바닥에 깔린 하얀 조약돌이 밟히는 소리가 달그락 달그락 거리는게 듣기 좋고, 걷는 재미까지 있었다.

올 때 부터 벼르고 온 '반신욕라떼' 그런데 메뉴판을 보니 반신욕라떼는 커피메뉴가 아닌 건지 커피 쪽 메뉴에 적혀있지 않아서 으음..? 했다. 달다구리한 맛일꺼라 기대했는데 혹시 입에 안맞을까 하는 생각과 아이스 커피가 되게 땡겼어서 바닐라라떼를 주문, 대신 매번 아메리카노를 즐겨 먹던 오빠가 나 대신 반신욕라떼에 도전해 보겠다고 했다. 메뉴가 적혀있는 멘트도 뭔가 독특하니 센스있어 보여서 구경하다가 브라우니도 하나 추가하게 되었다.

메뉴를 고르고 자리로 돌아와 카페 안을 쓱 둘러보니 오길 잘했다 싶을 만큼 분위기가 독특한게 참 마음에 들었다.

중앙에는 사람들이 온돌마루에 담요를 깔고 옹기종기 앉아있었는데 테이블은 되게 되게 익숙한 색상의 반상이었고, 음료를 받아오는 트레이는 어릴 때 목욕탕에서 봤던 세숫대야 였다. 세숫대야와 물바가지도 딱 목욕탕에서 쓰는 허~연 색에 검정 철가루가 뿌려진 것 같은 무늬의 딱! 그거 였다. 

창가자리가 해가 너무 많이 들어와 약간 눈이 부시다 싶을 때 온돌마루 쪽에 한 자리가 비게 되어 자리를 옮겼고 엉덩이가 따땃하니 참 좋았다. 반신욕라떼에는 쿠키맨 모양의 하얀색 인형이 한 손에 초록색 때수건을 끼고선 반신욕을 하고 있었고 브라우니 한켠에는 목욕탕 사인이 표시되어 있었다. 소품도 음료도 센스가 대단했다ㅡ 그 중 기념으로 행화탕 스티커는 오빠랑 나랑 하나씩 :)

음료와 브라우니를 먹으면서 이리보고 저리보고 인테리어 구경을 하게 됐는데 천장이 높고 나무가 얼기설기 다 드러나 있는게 한참을 쳐다보게 됐고, 높은 천장 한켠에 하얀색 드림캐처 같은 조형물도 참 독특하게 어울리는 느낌이 좋았다. 

카페 공간은 크게 2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차를 마시는 온돌마루 테이블 쪽을 지나 더 안 쪽에는 한 켠에 피아노가 덩그러니 놓여진 공간이 있었다. 이곳은 뭐하는 곳일까? 하면서 상상을 해보자니 피아노도 있고 가끔 공연을 하거나 미술 작품 등이 전시되거나 하지는 않을까ㅡ

카페이지만 카페아닌 듯 되게 특이한 문화공간. 사람이 많을까 걱정했던 우린 시간을 매우 잘 맞춰 골라온 덕에 잠깐 동안은 카페 안에 유일한 손님이 되었던 순간도 있었다. 그만큼 여유롭게 조용하게 충분히 공간 자체를 즐길 수가 있었던 것 같아 행운이었다.

큰 맘먹고 일부러 찾아온 보람이 있다ㅡ 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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